‘미래를 향한 두 번째 비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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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한 두 번째 비상을 위하여……’ – 에릭 갈랜드의 『미래를 읽는 기술』을 읽고 –
‘내게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것은 더 이상 슈퍼맨이나 투명인간을 꿈꾸지 않게 된 이후로도 여전히 유효했던 나의 은밀한 공상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내 흰 머리카락 속에서도 가끔씩은 떠올라 나를 쓴웃음 짓게 만들기도 한다. 예컨대 어느 지역의 부동산이 대박을 터뜨렸다거나, 누가 무슨 펀드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거나, 요즘처럼 주가와 환율이 요동칠 때면 슬그머니 떠오르는 일종의 몹쓸 버릇 같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세월은 흘러도 내 공상의 내용은 비슷했던 것 같다. 학창시절 꿈속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내일의 시험 답안지가 오늘날에는 로또 번호쯤으로 바뀌었을 뿐……. 그리고 그 공상의 뒤끝도 늘 비슷했다. 부질없고, 허망하고, 바보 같은……. 그런 나에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더 이상 부질없거나 허망하거나 바보 같은 공상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이제 성실히 연구하고 노력하여 습득해야 할 하나의 ‘기술’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 책, 바로 에릭 갈랜드의 『미래를 읽는 기술』이었다. 예로부터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여 발설하는 일을 ‘천기누설’이라 하였다. 이 천기누설은 천벌을 받을 만큼의 죄에 해당하는 이른바‘초극비 사항’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능력을 넘어,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인이나 조직의 리더들로서는 때로는 돈을 주고 살만큼 절실한 정보가 되었다. 그것이 기업의 생존과 얼마나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를 확인시키는 것에서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거대한 미국의 음반업계가 고객이었던 13세 소녀를 고소하는 황당한 오늘의 현실을 보여주며, 과거 MP3가 미칠 영향에 대해 간과했던 업계가 지금 치루고 있는 극심한 혼란과 경영난을 야기시켰음을 지적하고 있다. 더 나아가 디지털카메라의 미래를 읽지 못했던 당대 최고의 필름산업기업이었던 코닥과 정보화 사회를 예측하고 과감히 변신에 뛰어든 당대 고무장화 회사였던 노키아의 오늘을 대조해 보여줌으로써, 미래 예측의 절실함과 당위성을 증명하고 있다. 이렇듯 오늘날 기업에 있어 미래 예측은 곧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전문 미래학자인 저자 에릭 갈랜드는 자신의 미래 예측 기술을 토대로 고객사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컨설턴트사를 설립하고, 그간 3M, GM, 코카콜라, 네슬레, 포드, 존슨앤존슨, 지멘스 등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왔다. 미래 예측이 단순한 조언이나 충고를 넘어 고부가가치의 정보로서 상품화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랜드의 미래 예측 노하우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이 책이야말로 일종의 공인된‘천기누설’인 셈이다. 『미래를 읽는 기술』은 미래를 예측하고 전망하는 직접적인 기술을 단계별로 설명한 ‘제1부-도구와 테크닉’과 미래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각 분야별 트랜드와 추이를 설명해 주는‘제2부-미래의 원동력’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혼란을 당당히 기회로 바꾸는 미래주의를 역설하며 전략적 계획을 통해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는 방법을 터득하기를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스템적 사고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거시환경(STEEP) 분석방법과 각 요소의 상호연관성의 이해, 그리고 이를 도표화하여 시각화하는 훈련 등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STEEP 분석방법은 미래를 분석하는 다섯 가지 요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사회(Society): 인구통계 / 가족생활 / 공중보건 / 종교 기술(Technology): 생명공학기술 / 화학·소재과학 / 정보통신기술 제조업 / 나노기술 경제(Economics): 상업과 노동의 세계화 / 빈곤과 빈부격차 인플레이션 / 환율변동 환경(Ecology): 지구온난화 / 식수공급 / 표토와 농업시스템 / 대기의 질 정치(Politics): 국제관할조직 / 전쟁과 역내분쟁 / 정부규제와 정부기관의 감시 / 입법동향과 새 법안 /소송과 논쟁
이러한 STEEP 분석법은 내게 막연했던 사고의 범위를 안내하는 친절한 가이드라인처럼 느껴졌다. 어떤 분야에 대해서든 이와 같은 다섯 요인을 기초 틀로 하여 사고를 정리하고 자료를 분석하며, 각 분야간의 상호연관성을 토대로 이를 도표화하여 정리하는 것, 이것이 곧 그가 말하는 시스템적 사고인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트렌드를 분석하기를 권한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은 모든 시대 선구자들의 기본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각 분야의 선구자를 자처하는 수많은 전문가들과 과장된 언론들로 인해 우리는 소위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정한 변화를 찾아내는 혜안이야말로 미래 예측의 중요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예언자를 자처하는 무수한 거짓 선지자 속에서 진정한 메시아를 찾아내야 하는 성경의 마지막 숙제와도 같은 이 과제 앞에서, 저자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상에 앉아 시스템 도표 그리기를 조언한다. 그렇게 시각화된 트렌드 속에서 정보의 출처를 파악하고, 검증된 학술지나 전문기관의 공인된 보고서, 그리고 심층기업 분석 등의 자료를 찾고 신뢰할 만한 구체적 자료에 주안점을 두며 정리해 나가다 보면 진정한 트렌드가 가시화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리고 나서 책임의식 있는 자신의 예측을 타 전문가들의 예측과 비교하면서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다른 경향과 흐름이 벗어나지 않는지 확인 평가하고, 더 나아가 이 변화가 자신의 사업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그 잠재효과까지 폭넓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작성된 데이터들은 이제 머릿속에서 이미지로 그려보고 생동감 있게 세밀화 시키며 차츰 시나리오를 가시화해 나간다. 이 시나리오는 보다 심층화되면서 대안 모색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나온 미래 예측을 바깥으로 들고 나가 홍보하며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자신의 미래 예측에 생명을 불어넣기를 저자는 조언하고 있다. 어쩌면 그가 말한 이 같은 시나리오는 우리에게 익숙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북한의 김정일 국방장관의 건강이상설과 함께 북한의 심상찮은 동향이 언론에 부각되었다. 그리고 곧 외부의 언론과 북한 전문가들의 조심스러운 진단 속에서 김정일 사망 후의 북한의 변화를 몇 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우리 정부의 책임자들은 각각의 시나리오에 따라 대책과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의 오너들 역시 그 시나리오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처럼 미래 예측은 아주 먼 SF적 환타지가 아닌 바로 코 앞에 닥칠 현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과거의 공상과학(Science Fiction)은 오늘날에 와서 새로운 의미의 SF(Science Future)로 재탄생하는지도 모른다. 초기 007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인공지능적 과학기술들을 오늘날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점에서 그려질 미래의 사회 모습은 어떠할까? 제2장은 이러한 미래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미래의 원동력이 될 트렌드들을 다방면으로 모색하여 소개하고 있다. 사실, 제2장에서 갈랜드가 귀띔하는 미래의 조망은 솔직히 그리 신기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 인구고령화, 환경문제, 에너지, 새로운 형태의 정보기술, 나노공학 등은 익히 들어온 익숙한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그만큼 중요한 분야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베이비붐 시대의 고령화는 이미 세계적 추세임은 우리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어떠한 가정용품이 선호되며 교통과 주거 환경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작업은 그저 막연했던 고령화 사회의 추측을 한층 가시화시켜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진보된 정보기술이 민주주의에 어떠한 영양을 미치는지, 그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어떤 문제가 대두될지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짐작케 해준다. 이밖에도 의료나 생명기술 분야, 에너지와 나노기술, 매체와 통신, 자연환경과 생태계 유지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서술되는 그의 미래 전망은 전문가의 자료들과 실질적 예시를 통해 더욱 믿음직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특히 이 책이 기존의 경영 전략서와 차별되는 점은 나 같은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친절한 설명에 있다. 딱딱한 구성과 전문 용어로 도배된 전문경영서나 혹은 광고 카피 식 말장난으로 일관하는 기획서적들과는 달리 하나 하나의 설명에 있어 예시를 통해 알려주고, 각 장마다 요점정리식 리스트를 적어 둠으로써 일반인의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장의 도구와 테크닉에서는 ‘맥주’라는 하나의 아이템을 정하여 모든 단계를 실습하고 모범답안을 보여주는 식으로 명쾌하게 풀어나가는 점이 무척 흥미롭고 효과적이었던 듯하다. 비록‘맥주’애호가는 아니어서 맥주시장의 전망에 대해 개인적 호기심은 별로 없었을지라도, 이 맥주는 앞으로 어떤 분야의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내가 떠올릴 훌륭한 모델이자 화두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이 책의 제목처럼 미래를 읽는 기술자가 되었는가?’ 좀더 간단하고 솔직하게 물어보자. ‘미래가 보이는가?’ 대답은 민구스럽게도 ‘아직……!’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미래의 청사진이 드리워지고 내 눈에 드리워진 무지의 백태가 씻겨 혜안을 갖게 되는 그런 기적은 없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No!’가 아닌 ‘Not yet!’임을 강조하고 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꿈꾸었던 나의 바람이 공상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를 위해 어떠한 용기나 노력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데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옛날 슈퍼맨이 되기 위해서 나는 엄마의 보자기를 등에 두르고 과감히 서랍장 위에서 뛰어내려 보지 않았던가! 싱싱하게 빛나던 나의 청춘은 지나갔고, 두렵고 서글픈 나의 노년은 목하 대기중이다. 그 애매한 중간지점에서 열린 사고와 부지런함의 망토를 둘러쓰고, 나는 한번 뛰어내릴 용기를 내어 볼 참이다. 기적처럼 펼쳐 보여질 꿈속의 로또번호가 아닌, 보다 안전하고 여유로운 나의 미래를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