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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의사의 일기]   도축장, 천국보다 낯선 곳                                                                                                                                                          축산위생연구소 동부지소 이주희   
  지난해 추위가 채 끝나기도 전인 2006년 3월쯤부터 도축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니, 이 곳 생활도 벌써 1년이 다되어 간다.   10개월 전, 흰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던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때는 그것이 수의사로서의 내 일이라고 생각했고, 또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장님께서는 날 부르셔서 도축장을 나가보라고 하셨다.  도축장, 어감부터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그리고 병든 가축을 진단하고 치료해야 하는 수의사로서 도축장에서 도살되는 소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딜레마였다.   소장님께서는 병든 가축을 부검하고 진단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정상적인 것들을 많이 보고 알아야만 더욱 전문적인 판단과 진단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분명 맞는 말씀이겠지만 실험위주의 업무에 익숙해있던 나로서는 도축장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 커다란 부담이었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도는 도축장, 도축장, 도축장…   도축장이란 단어로 연상되는 단어는 피 바다, 피 냄새, 피 묻은 칼… 온통 잔인하고 무서운 것들뿐이었다.   28년을 살아오면서 도축장이라고는 대학교 시절 HACCP 제도가 도입되면서 인증을 처음 받았던 모 광역시 모 도축장에 견학을 갔던 것이 전부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긴 하지만 그 당시 내가 그리 겁을 먹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면서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밀려오는 부담감과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과거 조선시대, 동생인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첫째 왕자 양녕대군의 유배지가 경기도 이천이라고 했던가? 왠지 그의 고뇌와 슬픔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느끼면서 나 역시 잠 한 숨 자지 못하는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D-day.  잠을 못 자 퉁퉁 부은 대다가 표정까지 잔뜩 떨떠름한 얼굴로 출근을 했다.  싸늘한 아침 공기와 낯설음은 나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차갑고 딱딱한 회색상자와 같은 도축장의 모습과 초록색 작업복을 입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서서히 긴장감도 밀려오기 시작했다.   검사관 실에 들어선 나는 우선 흰색실험복으로 갈아입었다. 일회용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끼고,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비장하게 거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김치공장 아줌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풋…’ 비로소 나는 처음으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한 숨만 쉬던 나를 웃게 만든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 작은 웃음과 함께 나의 도축장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려 보았다.  나도 언젠가 더 크게 활짝 웃을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벌써 10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길다 면 아주 긴 시간이다.   그 동안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고, 지금 돌이켜 보면 처음 내가 가졌던 작업장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들은 무지의 소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전 7시 40분, 난 도축장의 작업이 시작되기에 앞서 나의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한다.  검인도장을 들고 나가 계류장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도축금지축이 입고되어 있지는 않은지, 병든 소,돼지들이 계류장에 들어와 있지는 않은지, 가축의 자세, 거동, 영양상태, 호흡 상태 등을 체크한다. 그리고 계류되어 있는 가축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관리를 잘 해주고 있는지도 점검한다. 특히나 돼지들은 예민한 동물이라 운송과정 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로 인해 여름에는 고열로 쓰러지는 돼지들이 종종 있다. 그런 수송열을 낮춰주기 위해 돼지의 계류장에는 스프링쿨러를 이용해 물을 뿌려준다. 또한 농장에서 묻은 분변이나 오물들로 더러워진 몸도 깨끗해지라고 샤워를 해주는 것이다. 잔디에 물을 뿌리는 것만큼 상쾌하지는 않지만 돼지들이 시원해 하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도 상쾌해진다. 그렇게 계류장 주위를 여기저기 구석구석 둘러보고 난 후,  작업개시 명령을 내린다.       그제서야 비로소 도축장의 아침은 시작된다. ‘탕’하는 총소리와 함께 말이다.  ‘으랏차차.. 워이~ 워이~’ 작업장 아저씨들의 기운찬 기합소리가 들려온다. 소가 흔드는 꼬리 때문에 소분변이 얼굴에 튀고 머리에 묻어도 아저씨들은 활기차게 소몰이를 해 나간다. 소들은 자신들이 죽으러 가는 것인 줄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저씨들의 이끌림에 큰 불평 없이 따라간다. 그렇게 계류장에서 도살실로 옮겨진 소들은 총격법으로 도살되어 진다. 영문도 모른 채 꿈벅거리는 소들의 눈을 보면 가엾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우리 국민들이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그 관리를 책임지는 검사관이 아닌가. 소, 돼지들의 명복이야 마음속으로 빌어줄 뿐이고, 도축의 과정에 있어서는 늘 정확하게 확인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도축의 과정을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잠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도록 하겠다.  도살은 검사관의 생체검사와 더불어 각종증명서와 신청서가 갖추어진 소에 한해서만 이루어  진다. 도살 되어진 소는 뒷다리를 매달아 방혈을 하고 머리 및 앞다리, 뒷다리를 절단한다. 그 다음 소의 털가죽을 벗긴 후, 배 쪽의 정중선을 따라 절개하여 흉강장기, 복강장기를 꺼낸다. 각 장기는 검사관의 검사를 받은 후, 폐기 장기는 폐기 통에 버려지고 합격한 장기는 내장처리실로 이동된다. 그리고 도체는 전기톱을 이용하여 2등분 되어진 후, 지육검사를 받은 후 안전한 축산물임이 증명된 도체는 식육의 종류별로 한우, 육우, 유우,를 구별하는 색상의 검인도장이 표시되고, 마지막으로 세척되어 냉장실로 들어간다.   돼지의 경우도 비슷하다. 단 돼지는 가죽을 박피하지 않고 탕박 (뜨거운 물에 담근 후 털을 뽑는 방식)을 한다. 그리고 다리를 절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역시 말이나 글은 뜻을 전달하기에 좋은 수단이다. 눈으로 보자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을 이렇게 단 몇 줄로 끝냈으니 말이다. 이것이 잔인한 묘사로 읽혔을지도 모르지만 이 과정 안에는 나를 포함한 작업장의 수많은 사람들이 세심하게 공을 들인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여기에는 대장균, 일반세균, 항생제 등 정밀검사 과정도 곁들어 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고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고기들은 이렇게 복잡한 과정과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여기 도축장에서는 내가 나이가 가장 어리다. 그런 내가 브루셀라 증명서, 도축검사 신청서 등 서류를 한 손에 들고 또 한손에는 볼펜을 들고 땀 흘리며 일하는 아저씨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관리를 한다. 그럴 때면 참 죄송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아저씨들은 나를 보면 일하다가도 말고 웃으시면서 ‘어유 검사관님 오셨어요’ 하며 깍듯이 인사를 해 주신다. 참 고마우신 분들이다. 나이 어린 검사관인 내가 불편할 수도 있을 텐데 언제나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주신다.   도축장 아저씨들은 험악하다? 전혀 아니다. 오히려 보통의 도시 깍쟁이들보다 훨씬 더 순박하고 인간적이다.   하지만 사실 일 할 때 모습을 보면 무섭기 그지없다. 조그맣고 날렵한 칼로 그 커다란 소를 순식간에 잡아버린다. 아저씨들의 다져진 근육질의 몸에도 새빨간 피가 튀곤한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이런 건 이렇게 하셔야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의 목소리는 개미가 기어가듯 점차 줄어든다.   그러나 하루하루 지나면서 아저씨들의 순박함과 다정함을 알아버린 지금은 똑같은 말도 그 뉘앙스가 달라졌다.  ‘반장님, 누가 이렇게 하랬어요, 이러시면 작업 안 해드려요, 검인도장 들고 나가버려야지’  ‘아저씨, 우리는 누구? 그렇죠 국민의 건강과 위생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죠, 아시면서 그러세요. 정말 실망입니다.’  아저씨들이 나 몰래 일이라도 저지를 양이면 가차 없이 쫓아가서 ‘아저씨!’ 하고 냅다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면 머쓱한 미소를 짓는 아저씨들.  농담 삼아 ‘검사관님 말씀은 하늘이지’ 라고 말해주시는 분도 계신다. 그럴 땐 정말 작업장 아저씨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하지만 도축장 일이라는 것이 늘 이렇게 순탄하고 고마운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식생활은 소이 순대라고 하는 내장장기를 먹는데 이 원료가 되는 내장장기를 가져가는 사람들은  심장, 폐, 비장, 장 등이 생계와 관련이 있으니 병변부위가 있는 가차 없이 폐기시키는 검사관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그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단지 먹을 수 있게 보이는 것과 먹을 수 없게 보이는 것으로만 구분되기 때문이다.     하루는 장염이 걸린 소의 장을 전부 폐기시켰는데 내장처리실에서 장기들을 다듬고 있던 순대업체 사장 한명이 올라와서는 다짜고짜 ‘니가 수의사면 다야’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난 폐기를 시킨 자초지종을 설명 해 주었다.   그래도 막무가내였다. 폐기시킨 장을 들고 와서는 마구 흔들며 나에게 욕을 하는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들어보는 거친 말들이었다. 내가 나이 어린 수의사라서 더 기세 등등해 하는 것 같았다. 눈물이 울컥 쏟아져 나왔지만 절대 울면 안 된다 안 된다 하면서 그 사람들 똑바로 쳐다보며 한마디 해주고 돌아 나왔다.  ‘폐기 이유가 있으니 폐기했습니다. 검사관은 업체들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써비스를 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세요. 그게 싫으면 로마를 떠날수밖에요.’  그러자 그 사람은 괴성을 지르며 나에게 장갑을 던지면서 난리를 부렸다. 난 그렇게 돌아서서 검사관 실로 돌아와서는 한 30분 동안을 펑펑 울었다. 그렇게 서럽게 울기는 처음이었다. 그 일은 작업장 온지 한달이 채 안 되어서였다.   아직 작업장에 정도 붙이지 못했던 때에 그런 일까지 겪은지라 앞으로의 생활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 일을 생각하면 참 우습다. 그냥 웃고 넘어가도 될 일을 분에 못 이겨 또박또박 말대답하며 싸우던 일이 조금 창피스럽기도 하다. 이 곳에서 일을 하다보면 여러 사람들과 부딪치게 되는 일도 많고 불편해지는 경우도 많다. 그 때는 나 역시 처음이라 당황한 나머지 그렇게 눈물까지 짜면서 고민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에 많이 익숙해졌다. 원칙과 양심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것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들과 인간적인 교류와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그런 문제들은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지난 10개월간의 노하우라면 노하우인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일에 있어서 인간관계는 부수적이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쩌면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겠지만 도축장의 일 이라는 것도 역시 성수기가 있고 비수기가 있다. 바로 명절이 다가올 때쯤이 되면 도축장은 정신없이 바빠지게 시작한다. 지난 추석 전에는 하루에 소 도축 량이 150두를 웃돌고, 돼지는 2000두를 넘어섰다. 작업량이 그렇게 많다보니 일은 새벽같이 시작하고 저녁 8시나 되어서야 끝이 나게 된다. 그렇게 작업을 끝내고 연구소에 들어와서는 식육에 항생제 잔류가 있지는 않은지, 도축장에서 청결히 작업은 하는지 유무를 검사하기 위하여 그날 작업 중에 채취해 온 시료들로 식육 중 잔류물질 검사, 일반 세균 군, 대장균 군, 살모넬라 검사들을 하고 나면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하게 된다.  
 
  그렇게 주말도 없이 보름 정도를 일하고 나면 정말 기진맥진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함으로써 명절의 차례상에 그리고 우리들의 식탁에 안전하고 맛있는 고기들이 오를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도축장일 이라는 것이 지겹거나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일도 많다. 도축장에는 소비자단체 등에서 가끔 견학을 오는데 그때 마다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어쩜 이런 아가씨가 이런 일을 하네요. 힘들지 않으세요?’  ‘우와 대단한 손이네요. 그렇게 작은 손으로 큰일을 하다니, 한번 악수해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내가 외계인취급 받는 씁쓸한 기분도 든다. 수의사, 검사관 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야 하는 걸까라고 생각해 본다. 예전의 나를 생각해 보면 뭐 그들이 나를 그렇게 보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도 도축장에서 일해보기 전에는 이 곳이 엄청나게 무섭고 잔인한 곳이고,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그러 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아저씨들이 아침 마다 ‘이수의사 아침은 먹었어? 아침 잘 챙겨먹어, 몸상하니까’, ‘ ○○도축장 검사관님이 깐깐해서 일하기 힘들긴 한데, 이쁘니깐 내가 참아야죠, 하하’, ‘우리 검사관님이 최고입니다. 친절 짱 입니다.’ 이러면서 농담도 하고 살갑게 대해주신다. 그럴 때 마다 내가 이 곳 사람들에 대해 품었던 오해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처음 도축장이란 곳이 생겼을 당시,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더러움과 빨간 피가 연상되는 장소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백정’이란 생각도 했었을 거다. 물론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듣기로도 예전의 도축장은 지금과 현저히 다르다. 위생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장소였다. 피범벅이 된 바닥에서 모든 작업을 이루고 있었으니, 지금의 HACCP인증을 받은 도축장과는 비교도 안 되리라. 그렇다고 지금 도축장이 무척이나 청결하고 위생적이어서 국민에게 100% 신뢰를 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향후 몇 년 안의 작업장은 지금과 또 다를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평지에 해발 2000미터짜리 봉우리가 그냥 솟는게 아니라고… 낮은 구름과 작은 산들이 이어지면서 표고를 점차 높인 연후에야 가장 높은 봉우리가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몇 십년동안 언론의 질타를 받으며, 검사관들과 공무원들의 검열에 불합격을 받고 그 과정 중에 시정을 하면서 이만큼의,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봉우리를 형성한 것이다. 흔히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고기 집, 대형할인마트나 동네 정육점의 고기들, 대학 MT, 단체모임 놀러갈 때 빠질 수 없는 고기…아무 탈 나지 않고 맛있게 먹는 것 만으로도 검사관으로써의 뿌듯함을 느끼지만, 난 지금 경기도 공무원으로서 우리 국민 모두가 맛있게 고기를 먹을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과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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