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경기도 제2축산위생연구소장  이종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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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해법과 매스미디어의 역할
[경기일보 2008-5-29]
며칠 전 AI예방 방역차 양계농가에 나갔다가 들은 이야기다.
그 마을에 93세 된 어른이 살고 계신데 그 댁 며느리가 연세 많으신 시어른을 봉양하기 위해 닭죽을 맛나게 끓여 점심상에 올렸더니 그 어른께서는 “이게 무슨 짓이냐? 너는 요즘 텔레비전도 안 보느냐” 하고 역정을 내시며 상을 밀쳐놓더란 이야기다.
단편적이지만 이것이 요즘 소비자들의 닭, 오리고기에 대한 생각을 대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 AI는 진정돼 가고 있으나 닭고기 등 양계산물의 소비가 70%나 줄어들어 관련 산업 전체가 고사 직전에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산농가와 가공·유통업체는 물론이고 치킨집, 닭갈비집도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니 그곳에서 일하던 알바 학생들에게도 여파가 미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참 AI가 기승을 부릴 때 모든 매스미디어의 뉴스는 물론이고 TV까지 특별프로그램을 편성해 닭·오리를 땅에 묻는 자극적인 장면들을 연신 내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디어의 수용자들은 반복적 효과로 나쁜 선입견을 주는 그 장면들만 기억에 남아 닭고기는 무조건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심지어 숲속의 새를 보아도 도망가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매스미디어의 힘은 실로 막강하여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많은 순기능을 가지고 있어 수용자는 미디어에 의존하게 된다. 특히 사회적으로 불안하거나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면 미디어 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진다고 한다.
문제는 매스미디어가 주는 역기능이다. 이번 AI와 관련한 이러한 보도형태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까. 또한 수용자에게는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고 과학적인 접근과 판단을 도울 수 있는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였을까.
물론 정책적 조언, 위험상황의 신속한 전파, 방역 독려 등의 효과가 없지 않지만 국민에게 필요이상의 불안감을 키워주고 죄 없는 생산농가와 유통 종사자들을 도산과 실업의 위기에 내몰리도록 거든 것은 분명한 역기능일 것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닭·오리와 계란이 안전하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에 의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려움에 처한 생산농가와 유통업체, 소상인들이 하루빨리 회복하여 정상적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매스미디어가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하물며 본의는 아니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소비자가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그림과 함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